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 동맹 (문단 편집) == 특징 ==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스위스]] 등을 제외한 [[중유럽|중부유럽]]의 [[독일어권]] 영방국가들이 소속되었는데,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에게 협력한 영방국가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제국군|프랑스 대육군]]의 무시무시한 군사력 앞에서 눈치를 살피다가, [[정복군주]] 나폴레옹의 설득(사실상 협박)으로 가입당했다. 겉모습은 독일 민족들의 연합국처럼 보여도, 실상은 라인 동맹의 보호자를 자처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제1제국]]이 독일 점령지에 설립한 [[종속국]]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라인 동맹 회원국들은 명목상 프랑스 제국의 동맹국으로, 프랑스는 라인 동맹이 공격받을 경우 13만의 병력을 제공해주며, 라인 동맹은 프랑스가 요구할 경우 11만의 병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프랑스와 평등한 동맹 관계는 아니었는데, 실질적으로는 프랑스 제국이 모든 권한을 쥐어, 프랑스인 관리들이 파견되서 회원국의 정치·군사·행정 등을 도맡았으며, 회원국 군주 휘하의 주요 궁정 관리마저 모두 프랑스 사람들(나폴레옹의 측근, 특히 코르시카 출신의 친척들)로 임명했을 정도로, 나폴레옹의 승인 없이는 사소한 것조차 할 수 없고 그저 병력과 물자만 제공하는 신세였다. 애초에 이 거짓된 동맹 연합은 단순히 프랑스 제국의 무력으로 독일 영방국가들을 억압하는 체제에 불과했으므로,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처참히 패한 후 프랑스 대육군의 군사력이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경지에 이른 이상, 나폴레옹에 협력할 이유는 없어졌다. 결국 [[라이프치히 전투]]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독일 영방국가들이 프랑스 제국에 적대하여 라인 동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일부 [[보나파르티즘|나폴레옹 추종자들]]은 라인 동맹의 배신을 비난하지만, 사실상 프랑스 직할령이었던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을 제외한 나머지 라인 동맹 회원국들은 대체로 프랑스 제국에 강제 합병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라인 동맹에 가입했을 뿐이며, 프랑스 제국은 그 대가로 라인 동맹 회원국들을 아프리카 식민지의 노예처럼 착취했다. 라인 동맹의 이탈은 나폴레옹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일례로 바이에른 왕국은 라인 동맹 회원국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나라로, 국왕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나폴레옹 전쟁 초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나폴레옹에 의해 왕으로 승격되고, 나폴레옹의 의붓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를 사위로 맞이했을 정도였는데, 이런 바이에른조차 프랑스의 수탈에 학을 떼다가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곧바로 [[손절]]하여 대프랑스 연합군에 합류해 파리로 진격했을 정도였다. 라인 동맹 회원국들이 얻은 것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자유도시]]와 라인 동맹에 합류하지 않은 영방국가를 인접한 회원국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만큼 프랑스에 지원해야할 병력이 더 늘어나는 문제는 있었으나, 이때 확장된 영토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도 대체로 유지되었다. 그 결과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100개가 넘었던 영방국가는 40여 곳으로 줄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는 왕으로 승격하거나 [[대공(작위)#s-3.1|대공]]으로 대체되었으며, 백작급 제후들은 모두 후작(Fürst)으로 단일화되었다.[* 원래 신성 로마 제국에서 'Fürst'는 황제 직속 제후라면 자칭할 수 있는 칭호였다. 다만 정식으로 후국(Fürstentum)으로 승격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승인이 필요했기에, 신성 로마 제국 말기까지 변경백국·방백국·백국 등이 남아있던 것이다. 관례적으로 Fürst를 칭하고 있으나 후국으로 승격되지 않은 백작령은 'Gefürstete Grafschaft'으로 지칭되었는데, 일반적으로 '후백국'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 'Princely County'로 번역된다.] 또한 라인 동맹의 압제를 통해 역설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사상과 법령체계가 독일 지역에도 이식되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빈 체제]]의 반동으로 일어난 [[1848년 혁명]]이 독일 지역에도 확산되어 영방국가들이 자유주의 헌법을 제정하게 만드는 영향을 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